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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 il Kim : 'ㅐㅏㅘ ㅐㅏㅏ' 展

갤러리 퍼플

Shin il Kim

May 24, 2019 - July 6, 2019

< 전 시 개 요 >


전 시 명 ㅐㅏㅘ ㅐㅏㅏㅣ


2019. 5. 24 (금) – 7. 6 (토)

장 소갤러리 퍼플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317-21번지

Tel. 031. 521. 7425 Fax. 031. 521. 7426

(대중교통: 지하철 중앙선 덕소역 하차 – 60번 버스 – 월문교 정류소 하차)

큐레이터 김예중 010-3034-2329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화요일 휴관


첨부자료 작가노트, 작가약력, 작품이미지


< 전 시 내 용 >


생각과 생각사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는 전시

남양주 와부읍 월문리에 위치한 갤러리퍼플 스튜디오(G.P.S: Gallery Purple Studio)는 ㈜벤타코리아의 후원을 받아 2013년 1기를 시작으로 유망한 작가들에게 스튜디오를 2년동안 제공한다. 나아가 창작활동에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창작공간과 전시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왔다. 1기 9명, 2기 8명, 그리고 2018년부터는 3기 8명의 작가가 입주한 상태이며 3기작가로는 김성윤, 김신일, 배윤환, 유의정, 이배경, 이완, 조현선, 한경우 작가등이 있다. 이번 5월 24일에 열리는 전시는 김신일 작가의 개인전인


<ㅐㅏㅘ ㅐㅏㅏㅣ>로 7월 6일까지 진행된다.

김신일 작가는 지난 10여년간 비디오, 조각, 드로잉, 사진 등 재료에 한계를 두지 않고 최대한 고정된 인식에서 오는 왜곡을 배제하며 세상을 보려는 자세를 바탕으로, 자신과 주변을 관찰하고 재고하며 느낀 과정을 인간의 기본적인 보는 행위를 통해 시각적 힘과 철학적인 통찰을 작품들로 발전 시켜왔다.


이번전시에서 작가는 비어있음이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예를들어 돌멩이가 쌓인 모습에서도 돌멩이간의 간격이 없으면 하나의 바위가 될 뿐 쌓임이라는 자체가 있을 수 없고, 비어있음이 있어 각자의 돌멩이의 존재가 드러나듯이 작가는 ‘생각 간의 간격은 이런 비어있음의 역할과도 같지 않을까?’ 라는 물음을 통해 물체를 범주화에서 벗어나게하여 ‘간격’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나아가 이번 작업을 매개로 생각과 생각사이, 시간과 시간사이에서 본질에는 어떠한 것이 있고 왜 그렇게 되어왔는지를 관람자가 자유롭게 무한한 상상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오색사이-In between Five Colors-space>에서는 쓸모가 없어져 버려진 폐품들을 촬영하고 확대하여 시각적으로나마 경직된 시간을 녹여지는 것 처럼 표현하였다. 또한 폐품들이 재활용 되기까지의 시간적 간격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활력성과 시간성을 부여하였고, 그 시선을 작품 깊은곳에 두도록 확대하여 사이라는 간격이 존재함으로써 유연하고,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해진다. 즉 무용(無用)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도록 하였다.

작가는 <A Natural Element-C>과 영상작업인 <1380초 보기> 를 통해 작품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변하고 있던 실상의 한부분을 어떠한 왜곡없이 담아냈다. 관람의 주체가 작품을 끊임없이 관람하고 있으면 작품의 작은 변화들을 체감할 수 없지만, 시간적 간격을 두고 관람하게 된다면 그 사이에서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쉽게 관념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이미지에 대한 접근 방식을 사실 그대로 작품내에서 시각의 한계로는 보지 못하는 어떤 미(美)를 이끌어 냄과 동시에 무심히 지나치던 시간들 모두 우리의 현재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이번전시를 통해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하고, 그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노트>



몇 시간째 내 미간을 누르고 있다. 그간 고민을 많이 했던 흔적일까, 시시콜콜한 생각을 많이 했던가, 그저 근육의 움직임이라면 어찌 그렇게 멈추었을까.



이미 깊은 골이 미간에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곳과 비슷한 자리에 제3의 눈이 있다는 전언이 있다. 그 눈의 위치와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는 두 눈의 물리적 한계뿐만 아니라 바라봄과 인지 그리고 해석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아둔한 면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사이의 가능성을 어디서든 찾고자 했던 건 아닐까.



두 눈의 간격이 없었더라면 제3의 눈은 있을 자리가 없고, 글을 쓰고 있는 손과 자판도 사이 없이 연결되어 있었다면 이 글을 쓸 수 없듯이 생각에도 어떤 ‘사이’가 있어야 생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생각과 생각 사이’의 존재를 가정하고 그 작용을 응시하고 있다.



문자조각을 해오며 문자 간의 간격, 그리고 문자 자체 내의 간격을 시각화 또는 음성화 해보고자 하였으나 마음에 맞게 되지 않아 보류하던 중 우연히 ‘폐품 이미지’를 오랫동안 보게 되었다. 쓰레기는 사람의 기존 용도에서 벗어났기에 다른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과거의 고착되었던 용도와 미래의 새로 태어남 사이에 있는 쓰레기의 변화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극대화된 사이에서 색은 새로운 공간을 만든 듯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간격에서 속도는 비교적 느리다. 느리게 보려 하기 때문이 아니라 연속을 자세히 보려했더니 느리게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질이형(同質異形)의 아이러니를 보았다. 사이, 경계를 보려할 때 무용(無用)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약동을 볼 수 있다. 이름과 정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엇’이 될 준비가 되어있는 폐품. 이 모호한 단계는 인식의 한계로 인해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음악은 음표 안에 있지 않고 음표와 음표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에 있다“는 모짜르트의 말처럼 대부분의 예술 활동은 이미 그 틈에 있다.



-김신일-


< 작 품 이 미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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